교단일기

하룻밤, 이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턱쌤 2024. 11. 13. 11:04

2009년 봉0초에서 했고, 
2018년 일0초에서도 했는데, 
2024년 부0초에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있다.
 
2009년 5학년 체육 전담교사를 하던 시절, 4학년 어느 학급에 소위 학급붕괴가 일어났다. 수업 중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마음대로 장난을 쳤고, 앞쪽 모범생 서너 명만 수업을 들었다. 학부모들 사이에 소문이 났고 참던 학부모들은 2학기 시작부터 학교에 몰려왔다. 담임 교체는 함부로 할 수 없으며 나쁜 선례가 될 수 있어 학교는 고민에 빠졌다. 
같은 동료로서, 교사로서, 담당 학년도 아니지만 고민 끝에 부담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쉬는 시간마다, 내 수업이 없을 때 마다 그 교실에 가서 지켜서 학생 지도를 했다. 학부모의 동의를 얻어 담임을 가장 무시하고 붕괴를 주도하는 2명을 집으로 초대해서 하룻밤을 잤다.
그 해 담임교체는 없었고, 그 겨울 그 반 담임선생님이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2018년 소문난 문제아의 담임을 맡은 해, 2007년 말 교감선생님은 조용히 나를 찾아 혹시나, 혹시나 그 아이를 맡아줄 수 있냐고 물었다. 긴 고민 없이 그러겠다고 해서 만난 아이다. 고작 아홉 살인데도 입에 쌍욕은 기본이고, 친구들에게 막 대했으며, 수업 방해도 심했다. 엄마가 이른 나이에 혼자 이 아이를 낳아 할머니에게 방치하듯 맡긴 것 때문에  내면의 상처가 그렇게 폭력으로 나타났다. 그 해에도 엄마의 동의를 얻어 집에 초대해서 좋아한다는 치킨과 피자를 사주며 하룻밤을 지냈다. 그리고, 연말에 그나마 좋아진 태도를 칭찬하며 다시 하룻밤을 더 보냈다.
안타깝지만 그 이듬 해 엄마의 자해소동이 들려왔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고, 할머니는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연락을 해 왔다.
 
2024년 정년퇴임하신 선배의 1학년 빈자리에 담임으로 들어온 해, 유치원부터 소문난 한 아이가 있다. 선 넘는 무례함, 고집불통, 친구 툭툭 치기, 선생님 말 무시하기, 떼쓰기, 이상한 소리 지르기, 매일 내 옆에서 점심 먹는데 체할 것 같은 산만함 등등 상태가 심각하다. 1학기 담임이었던 선배 교사도 이런 아이는 처음이라며 잡아주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이혼 과정에서 아빠는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갔고 엄마 혼자 키운다. 사정은 안타깝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매일 어르고 달래며 혼내는 일이 반복된다. 요즘 교사가 먼저 안 하는 게 낫다는 상담 전화를 엄마에게 두 번이나 해서 생활지도를 부탁했다. 그럼에도 결국 체육 수업 중에 함부로 돌린 훌라후프에 옆에 있던 친구가 눈 언저리를 맞아 다치는 일이 생겼다. 
이런 상황이 되니 이 아이와도 하룻밤 자며 이런저런 속마음도 듣고 친밀감도 높혀볼까 고민이 된다. 즉각적인 변화는 없었어도 하룻밤이 주는 '맑은 샘물 같은 기쁨'이 나와 아이들에게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맛난 것 먹으며 가만가만 아이의 이야기와 행동을 보면 만 배는 더 아이가 이해되고, 아이도 내 진심을 알아주는 하룻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하지 못할 것 같다.
나도, 학교도, 학부모와의 나이 차이도 변했지만,
무엇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오해가 넘치는 사회라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서다.
나와 시대의 변화가 쓰리게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