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한강 시집
- 문학과 지성사
- 2013.11.15
삶 속에 스민 죽음.
그 죽음을 향해가는 삶의 여정.
죽어서 되돌아볼 지금의 삶.
때론 몽환적이고, 때론 우울하다가, 때론 묵직하다.
힘겨운 내 삶, 어디로 눈을 돌려도 슬픈 고통의 일상이지만
다시 깨어나 푸릇한 생명을 노래하려는 깊은 성찰의 몸짓이 있다.
그 안에서 작가 한강이 가진 힘을 본다.
시집 내내, 고통과 죽음을 직시하되 강하게 뿌리내려 살아가는 삶의 의지가 보인다.
영원히 서안으로 갈 수 없을 것 같은 사나이가 비록 나 일지라도.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나는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 <파란 돌 >
내가 본 가장 긴 제목의 시가 주는 여운.
이천오년 오월 삼십일, 제주의 봄바다
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
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
어린 새가 날아가는 걸 보았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시에 자주 등장하는 혀와 입술,
인간이 가장 쉽게 사용하고, 가장 더럽게 생을 덧칠할 수 있는 그 혀와 입술,
그리고 심장. 어찌할 수 없는 심장에 관한 이야기는 읽는 나도 어찌할 수 없이 요동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혀를 놀리고 살 것인가, 심장에 거짓 없이 살 수 있을까.
나에게
혀와 입술이 있다.
............
나에게
심장이 있다.
............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 <해부극장 2>
아이가 지어준 작가의 인디언식 이름일 지 모를,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에 경의를 표한다.
회복기의 노래
이제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사족. 열일곱 번째 진행하는 연탄 모금에 '올해의 시'로 한강의 시를 올렸다.
서울의 겨울 12
한강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
내 가슴 온톤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니, 네 먹장 입술에
박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얼음 흐른 내 빰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들려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