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장미
11월 중순의 아침 기온이 14도이고, 낮 기온이 반팔도 가능한 21도인 2024년의 (이제 계속될) 이상한 가을이다.
다음 주 월요일엔 0도로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뉴스를 봤다. 게다가 금요일이다. 안그래도 태0이가 그제 왜 시 쓰러 안 나가냐고 따지듯 물었었고.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이 보도록 TV에 아침활동을 미리 적어두는데 거기에 바른 자세로 아침 활동하면 시쓰러 나가자고 적어뒀다.
시0이가 교실에 오자마자 TV를 보더니 내 앞으로 달려왔다.
"선생님, 신기해요! 아침에 크록스 신고 갈라 했는데 엄마가 시 쓰기 할지 모르니 운동화 신고 가래서 운동화 신고 왔어요."
"그래? 엄마가?"
"네, 그래서 신고왔어요."
엄마의 선견지명, 이 무엇인가? 어쩄거나 시 쓰기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학부모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니 뿌듯했다.
'걱정거리'를 글감으로 잡고 여느 때처럼 나가기 전에 시상 떠올리기 문답을 하며 적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주0이가 손을 번쩍 들고 오래 기다렸다.
"그래, 주0아."
"시든 장미요."
"엉? 장미가 시든 게 걱정이야?"
"네."
맞다, 맞다. 우리가 시쓰러 나갈 때마다 건물 앞 장미들이 하나씩 시들어가는 걸 지켜봤었지.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치고 아이들에게도 훌륭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납치될까 두렵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걸 보니 이제 됐다 싶어서 밖으로 나갔고, 주0이는 떠올린 그대로 이 시를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시든 장미 - 박○안 (인천 부0초 1학년)
장미가 점점 시들어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어간다.
이제 막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슬픈 시간이다.
* 주0이는 전에 쓴 시에서도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죽어가는 동물 때문에 '슬픈 시간이었다'라고 썼다. 말하자면 '슬픈 시간'의 연작시 같은 느낌이다. 걱정거리를 주제로 떠올린 게 장미가 시들어간다는 것도 기특하고, 그것이 슬프다는 말로 튀어나오는 것도 참 좋다. 물론 다양한 어휘를 구사할 나이가 아니라 '슬픈 시간이었다'를 반복할 수도 있겠다지만, 이미 시상에서 시드는 장미를 떠올린 것이 멋지다. 시드는 장미를 보고 이쁘다고 할 나이는 아니기에.
"세상에나!! 초등학교 1학년의 걱정이 장미가 시들어가는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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