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기

프렌치 수프-요리,사랑,존중의 등식

턱쌤 2024. 11. 16. 15:45

188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요리사 외제니(쥴리앳 비노쉬)와 미식가이자 요리연구가인 도댕(브누와 마지엘)의 이야기. (스포 있음)

★★★★☆

도댕에게 외제니는 20년 이상 함께 한, 없어선 안될 사람이자 영혼의 동반자 같은 존재. 연인 같지만
외제니가 결혼은 허락하지 않는다. 요리사와 미식가의 관계만으로 충분하다는 외제니의 뜻. '결혼은 디저트부터 시작하는 만찬'이라는 남의 말로 도댕은 애써 넘긴다.
★이대로도 좋지 않아요?
★문 잠글 권리가 결혼해도 있을까요?

(영화 대사 모두가 삶과 요리 철학을 담은 아포리즘이다. ★는 영화 내내 마음에 닿은 대사들)

직접 키운 채소 수확과 분주하게 혼신의 힘을 다하여 요리를 하는 외제니는 도댕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마법사 같은 존재다.

식사가 이루어지는 식탁과 요리를 준비하는 주방, 대비되지만  연결된 공간이다.
★드신 음식을 통해 대화해요
★(외제니)당신은 예술가예요.

그리고, 그 공간에 온 절대미각의 아이, '폴린'을 요리사로 길러보자고 말하는 두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별의 발견보다 감흥에 더 크게 기여하죠.

너무나 섬세하고 정성 가득한 요리들의 대향연. 완벽한 캐러멜라이징의 겉면에 소스를 바꿔가며 세 번 구운 송아지요리,
후식 오므레트 노르베지언을 맛본 폴린은 울 뻔했고, 콩소메 수프와 천을 뒤집어쓰고 먹는 오르톨랑까지.

유라시아 왕자가 초대한 푸짐한 파인다이닝 코스에 대해 미식가들은
'풍성하고 다채롭지만 빛과 투명함. 공기. 논리. 질서가 없다'라고 혹평하고, 집으로 온 도댕은 그 만찬의 충격을 이기기 위해 외제니의 요리를 먹고 잔다.
(난 회식 후 돌아와 누룽지를 먹고 잔다.)

아픈 외제니를 향한 도댕의 요리는 섬세함과 정성, 기다림의 끝판왕이다. 재료의 조화, 데코레이션, 완벽한 플레이팅까지 '그 사람에 대한 존중과 갈망'이 담겨 있다.  

기다리던 결혼 후 끝내 외제니가 죽고 도댕은 폴린을 가르친다.
★입맛이 완성되려면 문화와 좋은 추억이 필요하지
★이 맛을 기억해라

외제니가 가장 좋아한 와인을 마시는 도댕. 맛으로 기억하는 그리운 사람.
새로 발견한 요리사 아델 피두의 요리를 맛보고 설명하는 도댕의 말은, 흘러넘치는 메타포(은유)로 가득한 한 편의 시다.

엔딩장면에서 도댕은 성 오귀스탱의 말을 꺼낸다.  "행복은 갖고 있는 것을 계속 열망하는 것이다." 그렇게 외제니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전한다.
그러자 외제니는
"난 당신의 요리사인가? 아내인가?"라고 묻고 외제니에게 "나의 요리사"라고 답한다.
외제니는 요리사라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끝난다. 아내보단 요리사로 기억되길 바라는 외제니의 진심이 가을빛처럼 비추는 식탁과 함께.

맛있게 먹는 음식을 보며 눈물 나긴 처음이다. 비슷한 삶을 사는 제철음식 요리사 김용신 아나운서 부부(남편은 제빵사)와 동인천의 달쉡이 생각났다.
60을 넘긴 뽕네프의 연인, 줄리앳 비노쉬는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가? 이글이글한 잉걸불 같은 여름이 내 몸에 들어오면 좋겠다는 외제니의 말처럼 이 영화가 내게 뜨겁게 스며든다.

이젠 라면 하나도 더 정성껏 끓여야겠다. 이븐하고 타이트함보다 정성을 중요시하며.

* 영화를 보고 가족들에게 차려준 그날 저녁식사에 냉장고를 털어 김치찌개와 팽이버섯 계란 부침을 냈다. 평소보다 쌀 씻기와 칼질에 섬세함을 한 스푼 더 넣었다. 모두가 밥 두 공기 뚝딱. 영화는 이렇게 사람 손끝의 자세도 바꾸는 힘을 가졌다.

* 사족: 이 영화의 남,여 주인공은 실제 부부였다가 이혼한 사이다. 둘 사이에 자녀가 있어서 이런 촬영이 가능했던걸까? 다양성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