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일기/한강과 동시대에 산다는 행복 9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락 강연 「빛과 실」 전문

-한강, 2024. 12. 7, 스웨덴 한림원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다. 표지에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제목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선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올라가는 여섯 단의 계단 모양 선 하나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일곱 단의 계단 같은 선 하나. 그건 일종의 표지화였을까? 아니면 그저 낙서였을 뿐일까?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

- 한강 지음- 문학동네- 2016.5.25. 태어나 2시간 만에 하늘로 간 언니에 대한 상실감을 안고 사는 주인공(작가)이 언니(혼이 있다면)를 애도하는 (자전적) 소설이다. 언니가 살았다면 나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거란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삶(빛)과 죽음(어둠)의 경계에 같이 머물며 마주한다. 작가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흰색의 대상들에 대해 사색하고 언니와 잇는다. 폭격에 폐허가 되었던 흰색 도시가 재생된 것처럼 주인공의 마음도 상실을 흰으로 덮인다. 이렇듯 흰은 죽음이자 탄생이다. 고국(한국)에서는 비극으로 넋이 된 사람들이 거리 한복판에서 기려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상실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그녀 자신에게 숙제를 던진다.기억할 모든 죽음과 넋들에게-자신..

회복하는 인간

- 한강 지음 - (주)아시아 - 2013.6.15 당신은 너무 아픈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그게 발목 복숭아뼈 아래 커다랗게 구멍이 난 화상의 상처로는 덮이지 않습니다. 보기 드물게 아주 서서히 아물고 있다는 의사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 고통을 피해 자전거 페달을 밟고 또 밟아 도망가려해도 고통은 넘어진 몸에 타르처럼 들러붙습니다. 작가가 쓴 제목, [회복하는 인간]은 책을 다 읽고 난 후, [회복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마지막 평론가의 말처럼 아픔 그 자체에 집중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오히려 위로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이 사회가, 이 사회에 머무는 인간들이, 아주 서서히 라도 회복해서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더이상 스스로 '죽음'을 부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한강 시집 - 문학과 지성사 - 2013.11.15 삶 속에 스민 죽음. 그 죽음을 향해가는 삶의 여정. 죽어서 되돌아볼 지금의 삶. 때론 몽환적이고, 때론 우울하다가, 때론 묵직하다. 힘겨운 내 삶, 어디로 눈을 돌려도 슬픈 고통의 일상이지만 다시 깨어나 푸릇한 생명을 노래하려는 깊은 성찰의 몸짓이 있다. 그 안에서 작가 한강이 가진 힘을 본다. 시집 내내, 고통과 죽음을 직시하되 강하게 뿌리내려 살아가는 삶의 의지가 보인다. 영원히 서안으로 갈 수 없을 것 같은 사나이가 비록 나 일지라도.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나는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 내가 본 가장 긴..

눈물상자

- 한강 지음- 봄로야 그림- 문학동네 (어른을 위한 동화책)- 2008년 5월 22일  남달리 눈물 많은 '눈물단지'란 별명의 아이.눈물 상자를 가진 검은 옷의 아저씨와 파란 새벽의 새가 함께 걷는 동행길.그 길 끝에 만난  할아버지는 평생 울고 싶은 순간(슬픔, 고통, 감사, 기쁨)에도 울지 못했었다.전재산을 주고 산 눈물을 먹고 드디어 눈물을 쏟아낸 후, 풍기던 외로움과 슬픔은 사라졌다.이건...... 영혼을 물로 씻어낸 기분이구나.사람들에게 있다는 '그림자 눈물'.할아버지가 흘린 눈물로 '그림자 눈물샘'이 녹아내렸다.실컷 울고 그림자 눈물샘까지 녹아내린 할아버지는 긴 시간 슬픔에 짓눌려 떠날 수 없었던 집을 떠났다.아이도, 눈물상자를 가진 아저씨도 자기 길로.---------------------..

소년이 온다

- 한강 지음- 창비- 2014.5.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서 마지막 도청 항쟁에 있었던 동호를 비롯한 시민군을 소재로 한 소설. 계속 눈물이 앞을 가려 마지막엔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친일파 후손은 떵떵거리며 살고,독립운동가의 후손은 가난하게 산다.독립운동가는 동상마저 구석진 곳으로 쫓겨나는 세상이 되었다. 80년 광주를 피로 물들인 전두환과 일당과 후손은 재벌이 되어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고,피해자와 가족은 여전히 모욕 속에 살고 있다.심지어 빨갱이와 북의 소행이라며 모욕적인 망언을 일삼는 자들이 진실과 화해, 인권위, 역사... 에 위원장이 되는 2024년에 살고 있다.이 모두 죄인들을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이어지고 이어져 남긴 비극이자 참사들이다. 일제하의 죽음, 광주의 죽음은 지금도 장..

내 이름은 태양꽃

- 한강 동화- 김세현 그림- 문학동네 (어른을 위한 동화책)- 2002년 3월 내 두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색을 가진 꽃이 되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며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을 잘 견디라고.화려한 꽃들도 때가 되면 시들듯이 마냥 부러워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주변을 살피며 하루를 기쁘게 지내며, 폭력과 고통의 세계 속에서도 모든 것을 사랑하라고.그러다보면 '따뜻한 어른'이 될거라고. --------------------------------------------------------------------"달큼하던 향기 대신 독하고 씁쓸한 냄새가 나는걸."".... 정말, 너만 혼자서 괴로운 거라고 생각하니?""땅속에서 눈을 뜨면, 잠깐 동안 보았던 세상의 기억이 얼마나 눈부신지 몰라....""색..

작별하지 않는다

- 문학동네 - 한강 한강 작가의 말처럼 그녀의 책, '작별하지 않는다'를 먼저 읽었다. 책을 덮으며 탄성이 나왔다. 4.3의 제주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내다니! 거장의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다. 작가에 대한 경외심과 작품에 대한 심오함이 심장 깊숙이 스며든다.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였던 '모든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범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인간 삶의 나약함을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나타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 한 권으로도 이해가 됐다. 제주 4.3 사건 기행, 경산코발트광산 양민학살과 노근리 학살 답사기행을 했던 기억들이 소슬하게 떠오른다. 아직도 극우 세력은 사과는 커녕, 역사적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폄훼하고, 왜곡하고, 모욕 주는 일을 계속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

천둥 꼬마선녀 번개 꼬마선녀

-문학동네-한강 글, 진태람 그림 한강 작가의 유일한 창작 그림책.작가의 아이를 생각하며 쓴 책인 듯. 권두에 나온 호기심 많은 두 선녀. 해와 달이 된 오누이처럼 과 를 왕선녀에게 선물받고 인간 세상 구름위로 온 두 선녀이야기.앞으로 천둥 번개가 치면 구름 사이로 두 선녀가 보일 것 같다. * 24.11.5. 아이들에게 읽어주니 푸욱 빠져 이야기를 듣는다.  두 천사가 천사옷을 벗고 아래 세상을 보기 위해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아이~"하며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번개, 천둥 치는 소리를 실감나게 읽어주자  '맞다, 봤다, 무서웠다'  경험담을 쏟아낸다.  그리고, 간단하게 재미있는 장면을 그렸는데 예상대로 무지개 타고 오는 두 선녀 그림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