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27

김장 까잇거

김장을 했다. 20년 가까이 고향 파주에서엄니네와 세 자식들 네 가족이 모여했지만,6년 전 연로하신 부모님이 중단 선언하시고 그 뒤론 각자도생. 나 혼자 김장한 적도 있고매년 40킬로(+총각 10킬로)는 기본으로 했었다. 올해는 고2 아들 덕에최소로 맛만 보기로 했다. 20킬로만 담갔다.아내는 연차를 내서재료 준비를 했고,난 조퇴를 해서무채와 속 버무리, 양념바르기와 뒷정리 담당이다.20킬로 혼자 양념바르고 통에 넣기를 하고 아내는 통 교체와 정리만 한다. 내가 손이 마이 빠르다.50킬로 때도 혼자 바르고 담갔다. 이케 저케 쉭쉭 하믄 금방 통이 다 찬다.머리에 꽃은 안 꽂았다. 네 통 반이 나왔고끝낸 후 들기름 듬뿍 넣은 속대볶음에 반주 7잔은천국으로 나를 인도한다.다시 문산 얘기로 돌아가서. 20년 ..

살다보면 2024.11.29

겨울의 사랑

가을을 사랑한 겨울이기다림에 지쳐와락, 가을을 껴안았다. 그리움 가득 머금은 겨울이미치도록 그리웠다고 성토하듯가을 위에 무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이토록 처절하게. 와락 껴안고 펑펑 우는 겨울을팔을 뻗어 안아주는 가을이라니북유럽의 폭설이 이렇다면난 그곳으로 가야겠다. 매일 가을과 겨울의 사랑을 봐야겠다.애틋하고 간절하며 눈물겨운 이 사랑의 행위나도 다 쏟아야겠다.

살다보면 2024.11.27

낡은 틀을 깬다는 것

직장 후배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분주한 토요일 왕복 4시간 거리지만가깝게 두고 싶은 후배라 마다하지 않고 다녀왔다. 달랐다. 30여 년 봐왔던 것과 달랐다. 주례 없이 공동 입장 같은 것은 요즘 흔해졌지만. 신부가 발목이 드러나는 원피스 같은 드레스를 입고 신랑과 똑같이 하객을 맞이했고,신랑신부 입장 전에 양가 부모가 손잡고 1990년(공교롭게 같은 해) 당신들이 결혼할 때처럼 손잡고 입장했다. 굉장히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낡은 틀을 깨면이렇게 뜻깊고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질 때가 있다. 50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며, 틀 깨기에 주저할 뿐 아니라 내가 가진 틀이 고루한 것인지 조차 발견하지 못한다. 멋진 후배,열심히 행복 일구며 살길~^^

살다보면 2024.11.23

三重苦? 三重愛!

늘 북새통인 점심 급식을 가로질러,어린 내 새끼 기다리는 교문 앞 부모와 학원 선생님들을 가로질러,다시 예년 기온으로 내려준 소설(小雪) 찬바람 가로질러,공항 입국장 인파를 가로질러 나온 엄니를 모시고,북녘 바람 안고 고향으로 달려갔다.당신 인생의 마지막 해외여행이란 말이 한숨에 섞여 나왔다. 아흔에 가까워진 아버지 성화에 화장실 온풍기를 달고,미끄럼방지 스티커를 바닥에 붙이고,차려주신 밥 얻어먹다가,집에 혼자 있는 둘째에게 전화를 걸어저녁끼니를 점검했다. 챙겨주신 시골 엄니 반찬 싣고,북녘 바람 등지고,바람보다 빠르게 다시 인천공항 가서5일간 해외 연수 다녀오신 마님을 고이 모시고,집에 왔다. 부모님, 아내, 자식을 연결하는 오늘의 삼중 케어 플레이는 잘 마무리되었다.뿌듯하다. 그런데, 난 누가 챙겨주..

살다보면 2024.11.22

17회 CBS 그대아침 연탄 나눔

2008년부터니까 17년째다. CBS 93.9 Mhz 음악 FM 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의애청자들이 모아 온 연탄은10만 장을 넘었다. 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이 라디오 프로그램이 주는 감동을우리 사회의 그늘진 어느 곳에 보내따뜻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모였다. 기적이었고,지금도 기적이다.연탄값이 올라도 모금액은 그 이상 올라간다. 신기하고, 감동이고, 감사한 일이다. 그 기운을 고스란히 내가 받아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겠다고 반성하는 시즌이 되기도 한다. 세상은 늘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간다.잔잔한 강물 밑 흐름을 만들고 바다로 나아가는 힘은 결국 평범한 시민들이다. 고오급 사기꾼들이 정치와 법을 쥐고 국민을 밟아 갈라치기 할 뿐.♥그대와 여는 아침 연탄 기부하는 법(클릭)https://m.cafe..

살다보면 2024.11.19

8월의 크리스마스, 정원의 마음

벌써 몇 번째 인지 모르겠다. 몇 년 전 사드린 디지털시계 시각 맞추는 법을 모르겠다고 또 연락이 왔다. 시계 불빛이 밤에도 환해서 화장실 가기 편하시라고 사 드렸던 시계다. 부모님도 밝고 좋다며 몇 년째 고향집 거실 벽에 걸려있다. 하지만 조금씩 느려지는 시간이 문제였다. 리모컨으로 시간을 맞추는 건데 아버지께 몇 번을 알려드리고 사진으로도 설명드렸건만 매번 허사였다.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사는 내가 한 달에 한 번 넘게 방문을 하니 그때마다 맞춰드리겠다고 해도 성격 급한 두 분은 못 참고 전화를 하신다. 최근엔 다른 시계로 바꿔야 한다며 짜증도 내셨지만 그래도 마찬가지일 거라 은근히 미뤄왔던 터였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전화했다. "분이 문제가 아니라 한 시간이나 빨리 가고 있고 니 아버지 맨날 까먹으..

살다보면 2024.10.07

분갈이 - 때가 있다

늦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는 토요일 오전. 거름기 하나 없는 곳에서 오밀조밀 작게만 버티던 산세베리아들. 이사 선물로 어머니가 사주신 스투키가 낳아 다글다글 모여 자란 자구 아가들. 물꽂이로 자손 연명해 가는 녀석. 아내가 힐링교실에서 만들어 온 미니 정원의 천냥금과 페페. 그리고 아내가 실수로 쏟아부은 방향제 때문에 비실비실한 스파트필름까지. 벼르고 벼르다 토분 10개를 사서 분갈이를 했다. 제 몸에 맞는 크기의 화분들로 흙도 몽땅 갈아주고 코코피드, 펄라이트가 들어 있는 원예용 흙과 마사토를 섞어 공기도 잘 통하게 했다. 늘 신경쓰였던 과습을 방지하는 받침도 주문했으니, 분갈이 몸살 이겨내고 무럭무럭 자라 더 화려한 초록을 선물해 주길 기대한다. 사람도 때가 되면 분에 맞는 양분과 공간에서 살아야 ..

살다보면 2024.09.28

누구나 복 받는 사회

올 추석에도 만 원짜리 선물김 사서 한 상자씩 아파트 우리 동 경비아저씨들과 청소여사님께 드렸다. (명절마다 이렇게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 학교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돌린다) 다행히 올 해는 경비 아저씨 둘 다 바뀌지 않아 날 기억하셨는데, 5년 전 여기 이사 왔을 때부터 계속 인사하던 청소 여사님이 얼마 전 바뀌었다. 여사님의 거처는 내가 사는 동 1라인과 3라인 사이 외벽 지하 창고다. 사람 하나 겨우 쭈그리고 앉아야 하는 공간. 물 한 바가지 받으러 들어가면 습기 가득하고 좁은 데다 시궁창 냄새가 역겨워 후다닥 일 보고 나오는 그런 곳. 그런 곳에서 먹고 쉬고 그러신다. 새로 오신 여사님은 그런 곳을 스펀지 은박으로 둘러쳐 나름 리모델링을 하셨다. 그럼에도 냄새는 가시지 않았지만. 출근길에 마침 그곳..

살다보면 2024.09.21

삼시세끼 케미

삼시세끼 십 주년 첫날차배우가 만들던 고추장찌개에뭐든 김치만 넣으면 맛나다고 생각한 유 배우가 신김치를 몰래 넣었다.이내 그걸 알아챈 차배우가 삐졌고유배우는 당황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유배우는 막걸리 한 잔 따라 화해를 시도했고차 배우는 받았다. 막걸리가 맛있어서 풀렸다는데그 순간에도 차배우의 화는 남아유배우에게 투덜댄다. 10년 삼시세끼 우정이 깨질 듯아슬아슬했지만보는 나는 왜 낄낄 웃고 있나.그 짧은 5분이 너무 큰 공감을 주었기에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둘 사이엔 뭔가 끈적한 게 있구나~(평소엔 서로 연락 안 하고 산다는게 더 친근한 두 사람^^)부럽고위로가 되고 약이 되는 순간이었다.

살다보면 2024.09.20

정적에 스며들 평화

원적산에 올라 산등성이 넘는 바람을 눈감고 바라보다 얼마 전까지 산을 가득 메웠던 매미울음소리가 사라진 걸 느끼는 순간의 정적. 그 정적을 깨는 건 다시 바람과 귀뚜라미와 새소리. 여름 기세에 눌렸지만 비옥한 계절은 이렇게 스윽 왔고 7년 뒤 이 정적을 깨는 매미가 오기 전 6년 전 땅으로 간 매미가 내년의 여름을 몰고 오리라 그날엔, 그날엔 평화가 가득한 땅이길.

살다보면 2024.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