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아이들과 시 쓰기 19

걱정되는 숙제

오늘 아이들이 쓴 시똥에는 학원, 숙제, 시험이 역시나 들어있다. 1학년이라는 걸 감안하면 참 안쓰러운 일이다. 우리 반은 국어, 수학 단원평가 시험을 보는데, 나만의 원칙이 있다. 미리 예고 하지 않을 것, 점수를 쓰지 않을 것. 예고와 점수가 불러오는 아이들의 (부모로부터 받을)잔소리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시험 결과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우리반에서 제일 좋은 성격의 0린이가 이 시를 써왔다. 걱정돼는 숙제 - ○ ○ 린 (인천 부0초 1학년) 나는 숙제가 구몬이다. 어렵다. 12장이다. 하기 싫다. 끊고 싶다. 수학, 국어, 과학, 한자 이렇게 있다. 구몬을 끊고 싶지만 꿈이 치과의사니까 화이팅! 긴 설명을 할 필요가 없는 시다. 꿈을 위해 초등학교 1학년도 저..

시든 장미

11월 중순의 아침 기온이 14도이고, 낮 기온이 반팔도 가능한 21도인 2024년의 (이제 계속될) 이상한 가을이다. 다음 주 월요일엔 0도로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뉴스를 봤다. 게다가 금요일이다. 안그래도 태0이가 그제 왜 시 쓰러 안 나가냐고 따지듯 물었었고.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이 보도록 TV에 아침활동을 미리 적어두는데 거기에 바른 자세로 아침 활동하면 시쓰러 나가자고 적어뒀다. 시0이가 교실에 오자마자 TV를 보더니 내 앞으로 달려왔다. "선생님, 신기해요! 아침에 크록스 신고 갈라 했는데 엄마가 시 쓰기 할지 모르니 운동화 신고 가래서 운동화 신고 왔어요." "그래? 엄마가?" "네, 그래서 신고왔어요." 엄마의 선견지명, 이 무엇인가? 어쩄거나 시 쓰기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학부모가 관심..

만추-부쩍 큰 아이들

겨울이 코 앞까지 왔다는 것을 보여준 어제 입동 추위가 다소 가신 오늘. 햇살이 따뜻한데 그늘 안은 선득하다. 아이들과 바깥나들이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영하로 내려가면 아무래도 바깥에서 시를 쓰고 놀기는 어려워진다. 관찰은 할 수 있어도. 금요일이기도 해서 1교시 화재대피훈련을 마치고 2교시에 신나게, 부지런히 나갔다. 아이들도 오늘만큼은 제대로 쓰고 놀겠다는 의지가 보여서 나갈때부터 기분이 좋았고, 실제로 잘 쓰고 잘 놀았다. 그래서 기분좋게 아이들의 웃는 모습도 사진에 담아두었다. 깊어가는 가을만큼 아이들도 익어가고 있다. 햇님 - 김○연(인천 부0초 1학년) 햇님이 작고 내가 커진다면 햇님을 만져보고 싶다. 겨울은 햇님이 차가울까? 가을 햇님은 그럼 뜨거울까?겨울 햇님은 눈이 와서..

턱쌤은 천재마술사

나는 2학기에 지금 1학년 반의 담임으로 들어왔다. 정년퇴임 하신 선배의 빈자리를 채운 거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1학기때 모습이 궁금하여 아이들에게 묻곤 한다."00이 1학기때도 이랬니?""1학기 때는 이럴 때 어떻게 했니?"아이들의 대답을 참고해서 크게 다르지 않게 조절하며 학급운영을 하고 있다. 그런데 확연히 달라진 아이들의 모습이 하나 있다. 바로 활기참, 그 선을 넘는 몇 명의 아이들이다.교실에 오는 중국어 선생님과 수업 보조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면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에 꼼짝도 안 했단다. 그런 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강당에서 활기차게 노니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선을 넘는 아이들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자기 기준으로 내게 따지고 드는 것이다. 녀석들, 내가 만만해 보이니 소위 막 나가는거..

다양하게 볼 수 있는 눈

지난주 시 쓰기에서의 글감은 였다. 어떤 것들을 아이들이 담아 올까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아이들은 기대에 부흥하여 다양하게 가져왔다. 공개수업, 운동장, 가족, 우리 반 이야기, 친구, 가을과 날씨, 단풍잎, 거울, 턱쌤, 자기 자신 등등 아무래도 밖에서 쓰니 가을 풍경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 다양한 시 글똥이 나와서 좋다. 시 쓰기를 통해 아이들의 관찰력과 호기심을 키우고, 아이들의 현재 삶에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내 바람이 그래도 조금은 이루어지는 것 같다. 넓은 운동장 - 김○안(인천 부0초 1학년) 운동장은 넓다. 내가 10개, 100개, 1000개도 안 될 것 같다. 근데 누우면 될 것 같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운동장을 보고 0안이가 이 시를 써왔다. 너무 크게만 보이는 운동..

솔직한, 너무 솔직한 아이들

오늘의 시 쓰기 나들이에서 글감은 였다. 운동회, 학부모공개수업까지 다 마치고 나니 선생인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늘 그랬듯이 생각그물 그림을 그리며 지금까지 했던 관찰, 가족, 가을, 친구, 가족, 고민, 걱정, 행복... 모든 것을 다 써도 된다고 했다. 설명을 마치고 나가려는 순간 0연이가 손을 들었다. "엄마, 아빠 얘기 써도 돼요?" "그럼그럼, 말 그대로 마음대로 쓰는 거니까 당근 되지!" 밖으로 나가 자리를 잡고 신나게 시를 썼다. 아이들은 내 기대에 부흥하여 다앙하고 재미있는 주제로 시를 썼다.(이건 다음 편에) 그런데, 0연이가 이 시를 들고 내 앞에 섰다. 엄마 아빠 - 김○연 (인천 부0초 1학년) 우리 엄마가 집에 들어오면 아빠가 엄마 올 때마다 짜증이 난다. 그래서 ..

두근두근 학부모 공개수업

학교 행사 중에 학부모가 교실에 1시간 내내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행사인 학부모 공개수업날이다. 학교는 몇 달 전부터 계획서를 짜고, 한 달여 전부터 수업 방향을 정하고, 몇 주 전부터는 준비도 하며 긴장한다. 올해 1학년 공개수업은 아이들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창의적 체험학습 교과에서 '진로'영역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기가 잘 하는 것 한 가지를 준비해서 소개하는 '발표회' 형식이었다. 한 달 전에 미리 안내를 하고 2주 전부터 발표 종목과 노래, 사진 등을 모았다. 우려와 달리 다행이 모두 준비를 했고, 오늘 23명 정원에 33명이 오셨다. 학부모와 조부모까지 참여한 가운데 공개수업이 열렸다. 초등학교 입학 후 첫 수업이니 얼마나 보고 싶고 기다리셨을지 알고도 남았다. 무대 말고는 교실에 빈틈이 없..

가을 운동회

시작과 동시에 빗방울을 맞았던 어제의 가을 운동회.5분 만에 비는 그치고 간간이 구름 사이 햇살이 따갑기까지 했었다. 11시 달리기가 시작되면서 학부모들이 학교로 쏟아져 들어왔다. 응원석 계단에 앉아 있던 아이들 맨 뒤에서 엄마를 찾던 도움반 0하가 할머니 품에서 고개를 파묻고 울고 있다. 맨 앞에 있던 나는 뒤로 가서 할머니를 계단 밖으로 안내하고 내가 0하 옆에 앉아 20분 넘게 달랬다. 조금 안정된 후 뒤에서 안타깝게 보고 있던 할머니께 가서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엄마가 안 와서 그래요. 아빠도 없고..." 딸 혼자 아이를 키우는데 보기에 부족해보이는 손자가 울고 있으니 그걸보는 할머니의 마음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가슴을 치며 답답하고 불쌍하다는 몸짓을 하시는 할머니에게 너무 걱정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