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아이들과 시 쓰기 19

구름

아이들과 시 쓰기를 하면서 100%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교실 안에서 쓰는 것보다 밖에서 보고 듣고 관찰해서 쓰는 시가 훨씬 더 시적 감성이 스며있는 걸 발견하곤 한다. 지난 세 번은 놀이, 기후변화 위기, 아빠를 주제로 교실에서 썼는데 확실히 생동감도 없고 다 비슷하며 눈에 띄는 시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날 좋은 하루 다시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도 밖에서 쓰는 걸 10배 더 좋아한다. 쓰고 놀이터에서 놀 수 있기에) 세상 모든 것을 시로 쓸 수 있다는 것을 교실에서 미리 알려주고 가지고 있는 또래 친구들의 시집에서 몇 개를 읽어주고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무조건 '관찰'하여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라도 맘껏 쓰라고 일렀다. 0른이는 구름을 보고 썼다. 구름을 오늘의 시로 선택한 이유는 나도 구름이 ..

나무

0하는 도움반 친구다. 1학기에 경계성 장애 판정을 받고 국어수업을 도움반에서 하고 있다. 1학기에는 한글 읽고 쓰는 것을 힘들어했다는데(난 2학기부터 담임) 여름방학동안 열심히 배웠는 지 속도가 다소 느린 것 빼고는 잘 읽고 쓴다. 처음 한두 번은 시를 완성하지 못했고, 최근까지도 '잘 모르겠어요'를 입에 달고 쓰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한 달 정도는 0하가 하는 말을 폰에 적어서 그대로 보고 쓰게 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90%는 완성된 시를 들고 나타났다. 아쉬운 10%가 시적 생각이나 느낌이었는데 "키 작은 나무는 어떤 생각일 것 같아?" 물어보고 키 작은 나무의 생각을 적어오라고 했더니 마지막 문장을 멋지게 완성해서 시공책을 내밀었다. 나무 - 유○하 (인천 부0초 1학년) 나무 색깔이 이쁘다. ..

아빠

안 하면 서운하니 지난번 엄마에 이어 아빠를 글감으로 시를 썼다.아이들이 가정에서 아빠와 맺고 있는 관계의 정도가 보이고바라는 게 뭔지도 시에 배어있다.아빠는 힘든 존재지만 같이 놀고 싶은 대상이고때론 누워 티비만 보거나 게임만 좋아하는 한심한 존재이기도 하다.그리고,지구상에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있어도 그리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아빠 - 배○연 (인천 00초 1학년) 아빠는 회사를 가신다.너무 힘들시갰다.밤에 와서 힘들갰다.나랑 놀아주면 조챘다. 아빠 - 유○하 (인천 부0초 1학년) 아빠가 낮잠 잘 때 깨우면날 간지럼 피운다.간지럽지만 재밌다.어렸을 때 처럼 같이 살고 싶다. 하늘나라에 있는 아빠 - 안○호 (인천 부0초 1학년) 아빠는 하늘에 있다.5살 때 가셨다.엄마는 아빠가 화나게 해..

지구

2022 개정교육과정이 2024학년도 1,2학년부터 시작됐다. 교과서가 이전과 달리 모두 바뀐 것. 그중에서 통합교과인 '약속'을 배우는 중이다. 약속 첫 단원은 기후변화 위기를 알고 실천으로 대응하자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 1회용기, 플라스틱의 문제점을 배웠다. 함께 본 영상에 바다의 쓰레기섬, 뱃속 가득 플라스틱 쓰레기가 차 죽은 향유고래,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낀 바다거북을 보았다. 영상이 이어지면서 아이들 입에서 '너무 슬퍼요, 징그러워요'란 말이 절로 나왔고, 책에 있는 다짐 편지쓰기 대신에 시쓰기를 했다. 지구 - 박○안 (인천 부0초 1학년) 학교에서 바다 영상을 봤다. 슬픈 영상이었다.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아프겠다. 지구가 멸망하면 어떡하지? 너무 떨린다. 슬픈 ..

엄마에 품

가족을 글감으로 하는 글이나 시쓰기는 시작하기 전에 많은 생각을 한다. 한 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이 있기 때문이며, 이혼으로 별거중인 부모도 있기 때문이다. 올 해 우리반은 '엄마 '가 모두 있어서 엄마부터 시작을 했다. 하늘에 아빠가 있는 아이, 이혼해서 아빠는 2주에 한 번 만나는 아이가 있지만 그래도 다음에는 아빠를 글감으로 해서 글똥으로 누게 할 생각이다. 엄마에 품 - 김○빈 (인천 부0초 1학년) 엄마에 품은 정말 따뜻하다. 엄마한테 안기면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아서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엄마가 뽀뽀(로) 인공호흡하면 난 일어난다. 사르르 녹아서 죽을 수도 있다니! 1학년의 표현력이 이렇다니! 수업 시간에 '나의 멋진 하루'를 썼는데 '엄마가 미용실 쉬는 목요일'이라고 썼었다. 그만큼 00..

가을

지난 주말, 칼로 벤듯한 여름과 가을의 경계가 하룻밤 사이에 생겼다. 오늘 아침 출근길, 하늘에 어쩜 구름 한 점 없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 아이들과 시 공책 들고 운동장에 나와 관찰 시를 썼다. 가을 - 이○율(인천 부0초 1학년) 지금은 가을 가을이 오면 고추잠자리도 놀러 오고 단풍잎도 이사 온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도 걷는다. 감탄하며 아이에게 물었다. "이야~ 나뭇잎이 걸어?" "네, 아까 운동장 나오다가 봤어요." 맞다. 교실에서 나오는 길에 가을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불고 있었다. * 저작권법에 따라 다른 곳으로 복사, 유통, 공개 금지합니다. * 교육적 목적으로의 인용은 비밀 댓글로 허락을 득한 후 가능함을 통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