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무기력해지는 날

턱쌤 2024. 10. 18. 14:17

아이들 하교 후, 교실이 고요하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시간이다.
멀리 운동장의 아이들 소리, 누군가 복도 지나가는 소리만이 아직 내가 학교에 있음을 알린다.
 
오늘도 4명의 아이들에게 정신적인 지배를 받았다. 온 신경이 그 아이들에게 향한다는 뜻이다.
수업과 생활태도가 좋은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된다.
녀석들은 나와 친구들의 짜증과 화를 돋우며 거친 말과 행동으로 자기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다.
히스테리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주변 인이 고통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리 평정심을 찾으려고 해도 그 아이들의 행동에 따른 무거움이 하루 종일 나를 짓누른다. 학교 밖에선 좀처럼 느끼기 힘든 예민하고 묵직한 돌덩어리가 계속 뇌를 누르는 기분.
 
어르고 달래고 화를 내고 엄포를 놓아 착한 자아만 학교에 오자고 다짐받는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괴물의 아이가 웃는 얼굴로 등교를 한다.  하루 종일 제지하고 중재하고 어르는 일이 무한 반복된다.
어찌 보면 다짐하는 약속의 내용 자체가 틀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상담을 와서 80분을 울고 넋두리하는 부모의 안타까운 모습이 바로 아이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처절한 이 사회의 현재 모습이기 때문이다.

보기엔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가고 가치관의 혼돈으로 모두가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으로 사는 사회.
그러다 혼자 쓸쓸히 죽음을 데리고 다른 세상으로 가버리는 사회.
 
변화가 없고 더 악화되는 반복 속에 지치고 무기력해진다.
그저 오늘 하루 잘 넘어갔다는 자조 섞인 한숨만이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조금 더 참을 걸,
조금 더 안아줄 걸.
나 역시 같은 상황을 스스로 반복하는 것이다.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교사가 받는 시시포스의 형벌이다.
 
지나온 30년을 돌아보았다.
교실혁명부터 교육대개혁까지 많은 실천 속에 좌절과 실패를 겪어왔지만 후회없는 세월이었다.
하지만, 변화는 더디고 대부분은 더 악화되어 교육 계급은 더 심화되고,
그 계급은 고스란히 사회로 이어져 이 사회의 몸뚱이가 되고 말았다.
대학 서열화에 따른 인간 계급의 서열화, 그것을 견고하게 뒷받침하는 입시제도가 대표적이다. 반드시 바뀌어야 이 나라가 살아갈 미래가 있다.
 
더 평화롭고 더 공평한 기회가 아이들 모두에게 주어지도록 바꿔야 한다는 머릿속 외침은 아직 쨍쨍하지만 가슴의 열정은 식었고 무력감이 지배한다.
하지만 그 무력감을 지탱할 힘은 아직 남아있어 다행이다.
지지 않을 것이다.
내 아이들의 미래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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