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아이들과 시 쓰기

두근두근 학부모 공개수업

턱쌤 2024. 10. 28. 14:35

학교 행사 중에 학부모가 교실에 1시간 내내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행사인 학부모 공개수업날이다.
학교는 몇 달 전부터 계획서를 짜고, 한 달여 전부터 수업 방향을 정하고, 몇 주 전부터는 준비도 하며 긴장한다. 올해 1학년 공개수업은 아이들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창의적 체험학습 교과에서 '진로'영역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기가 잘 하는 것 한 가지를 준비해서 소개하는 '발표회' 형식이었다. 한 달 전에 미리 안내를 하고 2주 전부터 발표 종목과 노래, 사진 등을 모았다.
우려와 달리 다행이 모두 준비를 했고, 오늘 23명 정원에 33명이 오셨다. 학부모와 조부모까지 참여한 가운데 공개수업이 열렸다. 초등학교 입학 후 첫 수업이니 얼마나 보고 싶고 기다리셨을지 알고도 남았다. 무대 말고는 교실에 빈틈이 없고, 창문을 열고 복도에서도 관람을 했다.

나는 우리 반의 자랑인 기타와 하모니카 반주에 노래도 부르고, 목소리를 바꿔 아이들에게 동화도 들려주었다. <괜찮아 - 최숙희>라는 그림책인데 자기가 잘하는 것이 있으니 괜찮고 행복하다는 동화다. 세상은 원래 아이나 청소년이나 어른이나 모두 '괜찮다'. 그냥 둬도 알아서 잘 산다. 밥 잘 먹고 즐겁게 웃고 살 수 있으면 괜찮다. 다만 그 괜찮은 일을 뒤로 하고 경쟁에 지치게 하고 비교만 하는 어른과 사회가 안 괜찮을 뿐.


알쏭달쏭 공개수업  -  고○우 (인천 부0초 1학년)
 
부모들이 오셨다.
가슴소리는 점점 커졌다.
"아, 너무 떨려."
그래도 대단하다.
누가?
내가.
왜?
잘 참았으니까.
우리반 다 잘했어.
모두 고마워.
 
0우의 시에서 스스로를 격려하는 부분이 제일 좋다.
끝에는 친구들 모두를 칭찬하고 고맙다고 하는 부분은 더 훌륭하다.
그래서 0우에게 내가 고맙다.

* 0우는 평소 목소리가 크고 참견도 너무 지나친 친구다. 게다가 말할 때 감정을 키워 불평불만이 많은 친구다. 이 시를 쓰며 이렇게 곱게 말해주어 내가 몇 배는 더 고맙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 시가 오늘 너무 좋았다. 


 
 
돈 벌 수 있는 공개수업  -  이○윤 (인천 부0초 1학년)
 
엄마가 노래 부르면
5000원 준다고 했다.
선생님한테 바꿔달라고 했다.
안된다니 슬펐다.
아빠가 왔다. 

 
이 시를 보니 0윤이에게 미안했다. 큰돈을 손에 쥘 수 있는 기회였는데. 어제라도 말했으면 바꿀 수 있는데 당일 아침에 와서 바꾸겠다고 하니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원래 하기로 했던 줄넘기를 2단 뛰기로 방방 날았다. 나와 학부모들은 입을 쩍 벌리고 "잘한다, 어이구~" 감탄하며 봤다. 
이 시를 들고 나온 0윤이에게 귓속말로 전했다.
"0윤아, 오늘 줄넘기 한 걸로도 부모님들이 잘했다고 박수쳤으니 턱선생님이 오천 원 주라고 했다고 엄마한테 꼭 말해."
0윤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결과는 내일 물어봐야겠다.
(다음날 확인 결과, 못받았단다. 대신 마트에서 뭔가를 샀는데 그것마저 자기돈인데 엄마는 그 핑계로 안 줬단다. 엄마가 고수다.)
 
* 0윤이는 평소 잘 웃지 않고 늘 입을 내밀고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만큼 자기가 하기 싫거나 자신 없는 것은 초반부터 못하겠다 하고 한 시간을 아무것도 안 하고 버틴다. 장애를 가진 형 때문에 피해의식 같은 게 있다고 1학기 담임선생님은 기록부에 적어놓으신 걸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아토피도 심한 편이다. 내가 할 일은 "괜찮아. 0윤아, 너 이거 너무 잘해! 괜찮아!"하고 끊임없이 얘기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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