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아이들과 시 쓰기

가을 운동회

턱쌤 2024. 10. 22. 16:50

시작과 동시에 빗방울을 맞았던 어제의 가을 운동회.

5분 만에 비는 그치고 간간이 구름 사이 햇살이 따갑기까지 했었다.
11시 달리기가 시작되면서 학부모들이 학교로 쏟아져 들어왔다.
응원석 계단에 앉아 있던 아이들 맨 뒤에서
엄마를 찾던 도움반 0하가 할머니 품에서 고개를 파묻고 울고 있다.
맨 앞에 있던 나는 뒤로 가서 할머니를 계단 밖으로 안내하고
내가 0하 옆에 앉아 20분 넘게 달랬다.
 
조금 안정된 후 뒤에서 안타깝게 보고 있던 할머니께 가서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엄마가 안 와서 그래요. 아빠도 없고..."
딸 혼자 아이를 키우는데 보기에 부족해보이는 손자가 울고 있으니
그걸보는 할머니의 마음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가슴을 치며 답답하고 불쌍하다는 몸짓을 하시는 할머니에게
너무 걱정마시라, 0하 잘 극복할거라 말씀드리고 다시 0하 옆에서 잠시 더 달랬다.
그리고 잠시 뒤 (할머니가 연락한 것인지) 엄마가 나타났고
0하는 눈물, 콧물을 내가 건넨 손수건에 다 닦고 웃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손수건 이후로도 난 계속 썼다)
오늘 쓴 시에서 0하에게는 재미있는 운동회로 남았다는 걸 발견했다. 다행이다.

운동회잼있어요  -  유○하 (인천 부0초 1학년)

엄마가 학교에 안 와서 슬펐다.

잼있었다 운동회
엄마가 칭찬해서 좋았다
비가 와서 추웠다
조금 어려워도 재밌다
또 하고 싶다 운동회
엄마가 더 일찍 왔으면 좋겠다
엄마 찾느라 꼴등해도 괜찮다.

 

야속한 가을비가 어제에 이어 오늘, 내일까지 예정된 가을운동회를 멈추게 했다.
오늘은 5, 6학년이었는데 형을 둔 0원이가 그것에 대해 시를 썼다.
형제 사이에 흔하게 있을 수 있는 생각이라 흐뭇했고,
샘통이란 말이 재미있다.
비가 0원이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시란 이렇게 솔직하고 재미있으면 더 좋다고 아이들에게 이 시를 크게 읽어주었다.


형아의 샘통  -  최○원 (인천 부0초 1학년)
 
형아가 운동회를 할려고 했는데
비가 와서 못했다.
샘통이었다.
근데 우리는 했다.
너무 좋았다.
게다가 이겼다.
기분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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