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아이들과 시 쓰기

솔직한, 너무 솔직한 아이들

턱쌤 2024. 10. 31. 15:00

오늘의 시 쓰기 나들이에서 글감은 <마음대로>였다. 운동회, 학부모공개수업까지 다 마치고 나니 선생인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늘 그랬듯이 생각그물 그림을 그리며 지금까지 했던 관찰, 가족, 가을, 친구, 가족, 고민, 걱정, 행복... 모든 것을 다 써도 된다고 했다. 설명을 마치고 나가려는 순간 0연이가 손을 들었다.
"엄마, 아빠 얘기 써도 돼요?"
"그럼그럼, 말 그대로 마음대로 쓰는 거니까 당근 되지!"
 
밖으로 나가 자리를 잡고 신나게 시를 썼다. 아이들은 내 기대에 부흥하여 다앙하고 재미있는 주제로 시를 썼다.(이건 다음 편에)
그런데, 0연이가 이 시를 들고 내 앞에 섰다.
 
엄마 아빠  -  김○연 (인천 부0초 1학년)
 
우리 엄마가 집에 들어오면
아빠가 엄마 올 때마다
짜증이 난다.
그래서 싸운다.
 
"아이고, 그랬구나."
하고 돌려보낸 후 교실에 와서 아이들에게 시를 화면으로 보여주며 모두 읽어주었다.
읽다가 0연이 시를 보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사람 손 한 번 들어봐."
괜히 물었다. 몇 명 빼고는 거의 모두 손을 힘껏 든다. 그리고 각자의 상황을 너 나 할 것 없이 쏟아낸다.
이렇게 많이들 부모가 싸우고 있었다. 예전과 확연히 높아진 비율이다. 비교적 경제력이 중상위라고 인정받는 학구임에도.
사회가 각박하고 바쁘며, 분노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아이들이 든 손에서도 볼 수 있다니! 아이들 마음에 응어리는 계속 쌓여갈 텐데 어쩌면 좋은가?
 
서둘러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이유는 힘드시기 때문일 거야. 너희들 키우느라 일하시고 살림하고 힘드셔서 그런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

 
마침 급식 시간에 내 앞에 0연이가 앉았길래 물었다.
"옛날에 그랬니? 요즘 그러시니?"
"요즘 그랬어요. 싸워서 경찰도 집에 왔어요."
옆에 아이들이 있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교실로 와서 점심시간이라 놀고 있는 0연이에게 몇 가지 물어보니 엄마는 딴 집(할머니집)에 계시단다. 순간, 마음이 철렁한다. 안 좋은 과정에 있는 모양이다. 그 과정을 눈물로 지켜보는 0연이는 시로 무거운 마음을 드러냈다.
 
1학년다운 솔직한 말들 속에 아이들이 겪는 기쁨도 있지만 이렇게 우울함을 만날 때가 있다.
0연이도 울었단다. 어찌 안 울 수 있으랴. 
다행히 며칠 전 공개수업에는 엄마, 아빠가 다 오셨단다.
0연이 시공책을 다시 들춰보니 '엄마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났다'라고 그날 쓴 시에 적혀있었다.
아이들 글 한 줄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시를 통해 자기 마음을 쏟아내서 다행이다.
시 쓰기(글쓰기)를 하기 잘했다. 나 턱선생, 참,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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