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다 읽었다. 그렇다고 대충 읽은 것도 아니다. 선 굵고 강한 이미지의 단편영화 여러 편을 관람한 듯 내가 주인공이 되고, 범인도 되고, 아버지도 되어 스며들었다가 되돌아왔다.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가 당선되어 등단한 신예작가 배지영. 오란씨를 창작했을 때의 나이가 서른 남짓의 나이였을 텐데 <오란씨>에서 보여준 모래내 시장을 중심으로 한 배경과 인물설정은 마치 그 속에서 살아본 듯, 아니 그 일들을 모두 겪은 듯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놀라웠다.
<검정원피스를 입다>를 읽고 나서는 현경의 <미래에서 온 편지>가 생각났다. 잔인한 현실, 남성의 폭력, 그 폭력앞에 무기력한 여자의 모습은 현실이라지만 너무나도 처절한 현실이다. 약한 존재이기에 당하는 억압과 폭력은 이 사회에 너무나도 만연해있다. 성평등사회로 많이 다가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자'라는 이유로 갖게 되는 차별과 아픔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책 <오란씨>쏙 단편들 속에 이어져 흐르는 공통점은 짙은 회색의 현실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상처입은 영혼들의 노래들이다. 마지막 몽환적 분위기의 단편, <새의 노래>에서 그 새가 노래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 아픈 현실과 상처를 잊고 치유하고자 하는 강한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다소 냉소적이다. 영화 <와이키키브라더스>처럼 삶의 막바지에 이른 인물들이지만 마지막 장면, 인희가 부르는 노래가 '희망'을 보여주듯이 앞으로 탄생할 작가 배지영의 소설에서는 <오란씨>빛깔을 띤 희망의 빛이었으면 좋겠다.
참, 단편 슬로셔터 시리즈는 무라카미하루키의 단편집 <도쿄기담집>을 능가하는 재미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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