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년남자가 서울시내 버스중앙차로에서 도착하는 버스마다 오르내리고 있다. 손에는 볼펜 한 자루를 들고 열심히 뭔가를 기사에게 설명한다. 그의 직업은 10년 경력의 버스기사. 같은 버스기사에게 무슨 말을 건넬까? 그가 하는 일은 교통안전을 홍보하는 것도 아니고,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라디오 채널 CBS FM을 알리는 것. 그래서 그는 '939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올해 나이 마흔 셋인 정원영 씨는 번동-답십리-우이동을 오가는 1218번 버스기사다. 정 씨의 CBS FM 사랑은 유별나다. 그가 처음 CBS FM을 접한 건 3년 전 발달장애 아들이 라디오를 가지고 놀다 우연히 맞춘 CBS FM의 좋은 음악에 매료돼서다. 음악마니아였던 정 씨에게 CBS FM은 연예인들의 수다로 채워지고 정작 음악은 없는 일반 음악FM과 확연히 다른 음악방송이었다.
이후 자신의 버스는 물론 300여대의 회사차량에 93.9MHz 채널을 맞추고, 비번인 날에는 직접 거리로 나가 택시기사나 시민들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CBS FM을 알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는 'CBS 음악FM 93.9MHz'라는 글귀가 새겨진 볼펜(사진 아래) 2000개를 자비로 주문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 시장, 상가 등에 배포하고 있다. 정 씨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CBS FM은 정말 제게 큰 힘이 되었고 피로를 풀어주는 비타민같은 존재예요, 한사람이라도 더 듣게 해야죠"라며 힘주어 말한다.
라디오키드들의 특별한 라디오 사랑법은 또 있다.
그 중 하나가 차량용 스티커를 자비로 제작해 채널을 홍보하는 경우. 출판사에 다니는 권호순 씨는 성악가 김동규 씨가 진행하는 '아름다운 당신에게(오전 9시-11시)'를 즐겨 듣는데, 자신이 직접 도안해 제작한 차량용 스티커 2000장을 방송국에 보냈다. 또 출근길 팝 프로그램 '그대와 여는 아침 김용신입니다(오전 7시-9시)'의 차량용 스티커(사진 위)도 애청자 자연(아이디)씨가 유명 카툰리스트에게 도안을 의뢰·제작해 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인천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박근상 씨가 '그대와 여는 아침 김용신입니다'의 코너를 문집으로 엮어 지인 100명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전통적인 홍보방식은 자신의 가게 스피커를 통해 라디오를 틀어놓는 것. 일산 애니골의 연탄구이집 '친구'는 CBS FM의 오랜 동반자다. 이길성 사장은 '유영재의 가요속으로'부터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오미희의 행복한 동행', '꿈과 음악사이에'까지 영업시간 내내 93.9MHz에 다이얼을 고정시킨다. 이 씨는 "지금처럼 성공하기 전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무허가로 장사하다 쫓겨다니기도 했구요. 그때마다 CBS에서 들려주는 추억의 음악 들으며 많이 울었습니다"라며 CBS FM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1995년 개국한 CBS FM은 말을 버리고 음악을 선택해 청취자를 잡았다. 특히 1970~90년대 음악을 폭넓게 선곡해 중년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좋은 음악을 통해 삶의 위로와 기쁨을 느낀 중년세대들은 입에서 입으로 '자신들의 채널인 CBS FM'을 알렸다. 이에 CBS FM은 개국 15주년을 맞이해 오는 12월 15일을 '청취자 감사 대축제의 날'로 정하고,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라는 타이틀로 풍성한 특집을 준비하고 있다. <2010-11-18 16:48 CBS 예능제작부장 김우호 >
'살다보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도 스마트폰 세대! (0) | 2011.05.22 |
---|---|
어디로 가야하나 (0) | 2011.03.10 |
백운역 할머니 밥집 '맛있는 손칼국수' (0) | 2010.11.17 |
고향집넋두리 (0) | 2010.09.28 |
이시우 사진전 <한강하구> - 공간 415 (0) | 2010.08.11 |